뉴욕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한인 노인들이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돼 쫓겨난 소식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이후 많은 네티즌들이 의견을 표명했다. 대체로 80% 이상이 노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만 놓고 보면 이번 사태는 맥도날드의 과잉 조치보다 원인을 제공한 노인 고객들의 잘못으로 기울게 한다. 그러나 기사는 하나의 팩트를 반영할 뿐 진실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업소의 환경과 한인사회의 특수성이 간과된 채 노인들이 매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한인타운을 10여 년 취재한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진원지인 맥도날드 체인은 뉴욕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플러싱에 위치하고 있다.

플러싱은 맨해튼 도심에서 동쪽 끝에 위치한 변두리 베드타운이다. 7번 전철 종점이 있는 중심가 메인스트릿 일대는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했고 한인들은 인근 노던 블러바드로 이동, 동쪽으로 약 3㎞에 걸쳐 70~80%가 한인업소들이 줄지어 있다. 문제의 맥도날드 가게는 노던 블러바드와 파슨스 블러바드 입구에 있다. 시내버스가 수시로 지나는 대로 상 코너에 있지만 다른 체인점보다 3분의 1 규모로 작은데다 차를 탄 채 주문할 수 있는 ‘드라이브 인 쓰루’가 없다. 당연히 주차장도 없다. 인근에서 이따금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등 비즈니스 환경이 별로 좋지 않지만 그런대로 장사가 되는 것은 노인 고객들 덕분이다. 바로 뒤에 두 개의 노인 요양원들이 있을뿐더러 주위의 서민아파트와 노인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자주 들르기 때문이다.

이 가게의 주변 환경을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노인들에 비난을 퍼붓는 많은 네티즌들이 이곳을 목 좋은 곳에서 수많은 고객들이 드나드는 맥도날드 체인으로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버거킹 체인이 있고 그 위로 좀 더 가면 또 다른 맥도날드 체인이 있다. 둘 다 넓고 쾌적하다. 이곳들은 한인타운의 신흥중심인 ‘먹자골목’과 H마트, 한양마트 등이 인접해 고객이 훨씬 많다.

이곳에도 노인 그룹들은 있다. 한인만이 아니라 중국계 등 타민족 노인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 맥도날드나 다이너같은 대중식당에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몰려 앉아 오랜 시간 머무는 것은 미국의 문화요, 일상의 풍경이다. 이따금 손님들이 몰려도 노인들에게 자리가 없으니 나가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곳에 오는 한인 노인들은 당연히 인근 주민들이다. 대부분 버스로 5분 거리인 한인 경로회관에서 1달러에 제공하는 점심을 들고 오후 시간 커피를 즐기러 온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노인들이 문을 여는 새벽 5시부터 거의 하루종일 머물렀다고 했지만 그건 업소 측 얘기다. 아닌 말로 ‘맥도날드 폐인’도 아니고 누가 새벽부터 밤까지 그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에서 죽치고 있는다 말인가.

사실 점심 무렵까지는 좌석이 모자라지도 않는다. 이 가게가 반짝 장사가 되는 시간은 평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다. 인근 플러싱 하이스쿨 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노인들이 거의 매일 조금 먼저 와서 테이블 2~3개를 차지하고 있으니 눈엣가시가 된 것이다.

원인은 노인들이 제공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맥도날드가 노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어처구니없게도 공권력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업소 측은 일방적으로 ‘착석시간 20분 제한’는 안내문을 걸었다. 이를 빌미로 오래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반발하자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한인사회가 ‘인종차별이자 노인차별’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경로사상을 거론했지만 그 또한 핵심을 호도할 수 있다. 고객이 노인이든 젊은이든 단지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축출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번 사태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2일 노인 6명이 경찰에 의해 쫓겨난 것을 뉴욕한국일보가 보도하면서부터다. 놀랍게도 한인노인들은 지난해 11월 이후 네 번이나 같은 수모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 이후 인근 경로회관에선 지하실에 작은 카페를 만들어 25센트에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들은 오다가다 만나는 정겨운 사랑방도 되고, 집 근처에서 시원한 유리창을 통해 바깥 정경도 즐길 수 있는 ‘맥 다방’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인사회는 이 업소가 백인이나 유태인, 혹은 차별에 민감한 흑인 고객이었다면 경찰에 신고했겠냐고 의문부호를 던진다. 한인 노인들이 영어가 서툴고 미국 경찰에 순종적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횡포를 가한 것으로 믿고 있다. 특히 한인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뉴욕 최대의 한인타운인 플러싱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때 한인들 덕분에 먹고 산 업소들이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이유로 선량한 노인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내몬 처사에 격분한 것이다. 해당 업소가 한인 고객들을 조금이라도 존중했다면 ‘20분만 앉으라’는 오만한 규정을 만들리도 없고, 한인 통역을 구해 정중하게 부탁하거나 한인 경로센터 혹은 지역 정치인에게 중재를 요청했을 것이다.

한인사회는 관할 109경찰서에도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빈발하는 도난이나 강력사건 등 치안에 투입되야 할 경찰력이 업소가 신고한다고 쪼르르 달려와 노인들을 몰아내는 것은 결과적으로 주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한인 차별에 동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 네티즌들의 의견이 반반씩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노인들에게 다소 불리했던 점을 고려하면 해당 업소가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린 셈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네티즌들을 노인들을 압도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일부는 인신모독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노인들의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이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장년에 이민을 가서 자식들 뒤치다꺼리 하다 이젠 얼굴에 주름만 가득한 이들이다. 경로우대는 커녕, 돈도 없고 마땅히 시간 보낼 곳도 없어 저렴한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담소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노인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한 네티즌의 포스팅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 있는 댓글들을 보니 나도 늙으면 꽤나 핍박받겠네.”

뉴시스  - 노창현 특파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