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독감'으로 분류된 A형 독감(H1N1)이 맹위를 떨치면서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의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대형 약국과 병원의 사재기, 도매상의 '큰 거래처 몰아주기' 관행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2009년 당시 '타미플루 파동'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5일 오전 부산 동래구의 한 병원은 독감 환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이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은 이모(여·30) 씨는 인근 약국으로 향했지만, 약국에서는 타미플루가 다 떨어졌다며 다른 약국으로 갈 것을 종용했다. 그는 3곳의 약국을 더 돌아다닌 뒤에야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씨는 "약이 부족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추운 날씨에 약국을 찾아다니다가 병이 더 커질 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일 인플루엔자 유행 주의보가 발령된 후 독감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심환자 수가 11.7명이던 것이 지난달 넷째 주에는 37명까지 치솟았다. 이는 유행주의보 기준인 12.1명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특히 독감 환자 중 34.5%가 다른 독감보다 전염성이 유난히 강하고 증상도 심한 'A형 독감'(H1N1)이라고 질병관리본부는 밝혔다. 이 때문에 덩달아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대형 약국과 병원이 치료제를 사재기하는 데다 도매업자들이 평소 거래량이 많은 곳 위주로 타미플루를 제공해 이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한다. 부산시약사회 관계자는 "부산 지역 약국 중 10~20%가 타미플루 재고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네약국은 더욱 심한데, 이는 도매업자들이 대형 약국과 병원 위주로 물량을 몰아주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울경 의약품도매협회 관계자는 "일단 국내 판권을 독점하는 종근당에서 받아오는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게다가 수입·공급사인 한국로슈의 경우 반품도 할 수 없는 외자 제약사여서 타미플루를 쌓아놓는 도매회사는 국내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로슈 측은 "유통상 문제가 있어 일부 지역에 타미플루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갑자기 타미플루 수요가 급증한 점도 품귀 현상을 부추겼다. 질병관리본부와 협의해 물량 부족을 겪는 지역은 정부 비축분으로 해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A형 독감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스위스 바젤에 있는 공장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경기도 안성공장에서도 생산됐으나 2006년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