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모(71·여)씨는 최근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았다.

독거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에 나서면서부터다. 2010년에 노모를, 이듬해에는 20년 넘게 병간호했던

남편을 잃고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렸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2년째 활동 중인 그는 최근 봉사활동에 주 3∼4회, 월 40시간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박씨는

“가족 뒷바라지에 나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생활도 누리면서 내 심신을 챙기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복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노인들이 직접 노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600만여명에

육박한다. 특히 독거노인은 약 118만명(20%)으로 2000년(약 54만명)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나 담당 공무원 수는 제자리걸음이어서 노인을 복지 서비스의 수혜자로만 여겼던

기존 관점을 뒤짚는 프로그램들이 노인복지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은

2008년부터 ‘함께살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들이 직접 독거노인들을 방문해 각종 물품을 전달하고 집안일을 돕는 등 봉사활동 프로그램이다. 2008년에는 4개 공동체에 40명이 활동했지만 현재는 14개 공동체에 140명이 활동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독거노인도 2008년 160명에서 지난해 560명으로 크게 늘었다. 공동체마다 활동 전체를 관리하는 주부 자원봉사자(밀알)가 있고, 노인 자원봉사자들과

10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안부 확인, 말벗 되기, 장보기 등 소일거리부터 집수리, 심리상담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공동체 형성을 통한 활동이다보니 지속성이 담보되고 다른 동아리 활동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처지가 비슷한 노인끼리 서비스를 주고받기 때문에 수혜자뿐 아니라 참여자의 효과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의 40.5%는 ‘보람 있을 것 같아서’,

24.1%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라고 답했으며 만족도(5점 만점) 또한 4.53점으로 높았다.

영등포구의 자살률이 2011년 31.7에서 22.7로 줄어드는 등 각종 지표의 변화도 나타났다.

어린이나 젊은이들의 단골행사였던 경로당 순회공연의 풍경도 달라졌다. 서울 성동구에서는 올해 초부터

노인 20여명이 실버악단을 꾸려 지역 경로당에서 순회공연을 펼친다. 아코디언, 기타, 하모니카 등 다양한

악기로 노인의 감성에 맞는 선곡을 하기 때문에 호응도가 높다고 구는 설명했다.

노인들의, 노인들을 위한 라디오방송도 인기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덕진노인복지관은 2011년부터 노인을

위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인 덕진노인방송국(DSB)을 운영 중이다. 처음에는 작가, 아나운서 역할이

대부분이었지만 3년째에 접어들면서 방송장비 조작과 방송국 운영 지휘까지 노인들이 직접 해내고 있다.

(세계일보 김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