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센터 다니며 좋아하시는 어머니… 마치 어린 딸 유치원 보내는 기분

깨끗한 시설 젊은 봉사자들이 돌봐… 나를 '언니'라고 불러도 여전한 사랑

치매 환자 돌보려면 24시간 긴장… 고령화 사회에 이런 시설 늘었으면

"어멈아, 내 시계, 시계가 없어졌다!" 어머니는 아버님 생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시계를 꼭꼭 숨겨놓고 저렇게 억지를 부리신다. 그럴 때는 얼른 모시고 밖에 나가서 기분을 바꿔 드리는 게 상책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가까이 계시는 친정 엄마께 자주 들렀었다. 친정 엄마는 시어머니 치매 수발을 드는 딸이 안쓰러우셨는지 싫은 내색 없이 맞아주시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흔 넘기신 친정 엄마 신세를 지는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데이케어센터'(낮에만 환자를 돌보아 주는 시설)를 알게 되었다.

센터는 장기요양 3등급의 치매 노인들이 오는 곳이었다. 마침 한 자리가 비어 있어 입소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뜻밖에 좋은 반응을 보이셨다. 낯가림 없이 복지사의 손을 꼭 잡고 들어서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사실 어머니는 십여 년 전부터 치매를 앓으셨다. 다행히 일찍 발견해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았기에 더 심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침 9시 아파트 현관에 어머니를 모시러 센터 전용차가 왔다. 그런데 전날 꼭 가시겠다고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바뀌었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입혀 드리는 등 분주하게 준비를 서두르자 긴장했는지 가고 싶지 않다고, 집에 있겠다고 하신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억지로 가시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복지사의 출발을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어제 복지사들과 만나 환했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얼른 수화기를 귀에 대 드렸다. "정○○ 어르신, 어서 내려오셔요. 차가 왔어요." 복지사의 상냥한 목소리를 듣자 "어머! 알았어요. 빨리 갈게요." 금세 밝아지시는 게 아닌가. 내게 재촉까지 하신다.

이름을 불러 드리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혹시 그동안 자존감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건 아닌지…. 언젠가 한 신문에서 '치매 환자의 자존감'에 대한 기사를 읽고 번쩍 정신이 든 적도 있다.

어머니가 떠나시자 아침 내내 했던 가슴앓이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그냥 가시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가기 싫다는 어린 딸을 온갖 감언이설로 구슬려 억지로 유치원에 보낸 심정이었다. 어머니를 보내려고 잔꾀까지 부린 소행에 스스로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냥 집에 모시고 있을걸,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 앞뒤 보지 않고 어머니가 탄 차를 쫓다시피 센터로 향했다.

직원이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입소자들이 활동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딸이 다녔던 유치원에도 이런 방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딸의 보호자였던 나는 이제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필경 먼 훗날엔 아들이나 딸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 이렇게 서 있을 것이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미래의 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실내에는 소파와 의자가 둥그렇게 놓여 있었다. 차를 타고 속속 도착한 노인들이 그곳에 앉았다. 나름 앉고 싶은 자리가 있어 가끔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단다. 휠체어를 타고 계신 분도 있고, 50대로 보이는 치매 환자도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말로만 듣던 조기 치매가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복지사와 요양사들이 정성껏 입소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점심 수발과 양치질, 화장실 뒷수발까지 빈틈없이 거의 일대일로 도와주고 있었다. 봉사 나온 대학생들도 차분하게 한몫을 거들고 있었다. 젊은이들과 함께 하니 노인들이 한층 밝아 보였다. 따뜻한 분위기, 깔끔한 환경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날은 웃음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으면 모두 따라서 깔깔 웃었다. 집에선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환한 웃음이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옆에 앉아 계시는 분과 이야기도 잘하고 아주 즐거워하셨다. 말벗이 얼마나 그리우셨으면 저러실까….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시는 걸 보니 그동안 방치했구나 싶어 죄송했다.

오후 5시에 마중을 나갔다.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는 내 손에 손수 만든 종이 장바구니를 쥐여주며 "언니, 요놈 들고 장 보러 가요" 하신다. 가끔은 이렇게 나를 올케언니로 착각하신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런데 내일 또 놀이 하러 가실 거지요?" 곁부축을 해 드리며 물으니 "그럼요, 내일은 언니 모자 만들 건대요!" 하며 내 손을 꼭 잡으신다. 망백(望百)의 아련한 정신에도 못난 며느리 사랑은 여전하신 우리 어머니! 순간 나는 가슴이 차올라 가만히 안아 드렸다.

데이케어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오시니 전보다 식사도 잘하시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아 모시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우선 소지품을 숨기는 일이 없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설이 대도시에만 있을 뿐 지방에는 잘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한다. 시골에 친척 되는 치매 환자는 자손들이 24시간 돌보느라 갖은 고생을 하고 있다. 치매 환자와의 하루는 사실 쉽지 않다.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노인 케어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도 이제 거기에 걸맞은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고 난 다음부터 앞으로 나도 지치지 않고도 어머니를 오래오래 모실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