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쉰들러, 김성은 목사]

2000년 사업중 떠난 중국 선교길, 北주민 시신·꽃제비 보고 생환 도와

북한군이던 아내도 그 당시 만나

"정착 못하는 탈북자 보면 딱해… 자립시설 만들어 도울 겁니다"

갈렙선교회 김성은(48) 목사는 지난 15년간 "무모하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탈북자 인권 활동가인 그는 길도 없는 동남아시아의 밀림, 공안이 뒤쫓는 중국의 국경 지대를 다니며 탈북자를 구출했다.

자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충남 천안에서 운영하는 작은 교회는 전셋돈이 없어 문을 닫을 뻔한 적도 있다. 2009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밀항선에 탈북자 4명을 태웠을 때는 교회 전셋돈을 담보로 배를 빌렸다. 당초 30여명을 탈출시킬 계획이었지만 "아무 대가 없이 탈북시켜주겠다"는 김 목사를 인신매매상으로 여긴 탈북자들이 막판에 숨어버렸다. "탈북자들도 제가 무모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전북 군산 출신인 김 목사는 대우 계열사를 다니다 창업해 원전 플랜트 관련 개인 사업을 했다. 1998년 무렵부터 교회 신자로서 탈북자를 돕던 그는 2000년 다니던 교회 목사를 따라 중국 선교를 떠났다. 당시 두만강에는 하루 수십 구씩 북한 사람들의 시신이 떠내려왔다. 굶어 죽거나 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다 죽은 사람들이었다. 강가에 선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그의 소매를 당겼다. "같은 동포끼리 같이 좀 삽시다." 부모 없이 중국 국경을 떠돌며 구걸하는 '꽃제비'였다. 김 목사는 "그 순간 내가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학대를 다니면서 중국 국경에서 탈북자를 도왔다. 헌옷 수백 벌을 트렁크에 담아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북한에서 군인이었다가 탈북한 아내도 그때 만났다. 김 목사는 "아내를 만나면서 탈북자들을 돕는 일이 정말 내 가족의 일이 됐다"고 말했다.

탈북자 구출이 인생의 과제였던 김 목사에게 올 들어 변화가 생겼다.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것을 돕겠다고 결심한 것. 계기는 지난 3월 40대 탈북 여성의 죽음이었다. 김모(45)씨는 2002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북한과 중국에 가족이 있었던 그녀는 가족에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방 여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성매매까지 했다. 지난 3월 여관에 배달을 나간 김씨는 '손님'인 이모(34)씨의 손에 살해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전과 16범이었다.

김 목사는 "죽은 김씨는 한동안 우리 교회에 나오던 교인이었다"며 "탈북자가 자활할 수 있는 여건만 충분했더라면 그렇게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주위에 탈북자들이 먹고 생활하면서 동시에 돈도 버는 자활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계획도 구체적이다. 천안에 5층짜리 건물을 사서 1층에는 탈북자 가게를 열고 위층에는 탈북 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시설을 들일 생각이다.

"성인 탈북자들이 커피 전문점, 분식집, 중국 식품 전문점을 해서 돈을 벌고, 이들이 같은 건물에 사는 북한 출신 고아와 청소년을 돕고 보살피자는 아이디어입니다."

김 목사의 노모는 살던 집을 팔아서 아들의 계획에 돈을 대기로 했다. 국내외 후원자도 모을 계획이다.

"처음 탈북자를 구출해올 때도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과연 가능할지 두렵기도 하지만 탈북자 인권 활동을 하다 보니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니 길이 열린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