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얼마나 더 있어야 60대 부부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걸까. 보건복지부는 최근 우리나라 2인 가족 최저생계비로 97만4231원을 책정해 고시했다. 젊은 부부나 노부부 모두 이 금액에 포함된다. 특히 가구, 의류 구입이 줄어들고 , 자식부양의 짐을 덜은 노부부의 최저생계비는 이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지난 3월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퇴임 후 로펌으로 직행하지 않고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알바처럼 일한 김능환 전 대법원장의 서민적인 모습에 국민들은 작은 감동을 받고 마음속으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가 5개월 만에 마음을 바꿔 ‘율촌’이라는 로펌에 출근한다고 밝혔다. 그는 맹자의 ‘왕혜왕’ 상편에 나오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로 변심의 이유를 댔다. 무항산 무항심이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란다.

우리나라 대법관이 퇴임 후 받는 연금이 월 400만원가량이다. 김 전 대법관의 통장에 매달 그만큼의 돈이 꽂힌다는 말이다. 일반 샐러리맨이 평생 국민연금을 붓고 받는 돈은 월 120만원 선이다. 무려 4배에 가까운 액수이다. 여느 노부부는 알량한 연금으로 노년을 견뎌낸다. 김능환 전 대법관의 경우는 사정이 좀 더 낫다. 부인이 편의점을 하고 있다. 두 곳에서 나오는 돈을 합치면 400만원+α이다. 그런데도 그는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대고 전관예우의 비리 온상인 로펌 행을 택했다.

김 전 대법관이 점퍼 차림에 목도리를 둘둘 말고 음료수 박스를 옮기는 모습에서 먹고사는 데 지친 국민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대부분의 전직 대법관들이 누리는 풍족한 생활을 뿌리치고 정직한 삶을 택해 서민과 함께 동고동락하겠다는 그의 말이 토할 것만 같은 물질만능의 세상에 한줄기 구원의 빛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국민들은 때때로 책상머리에서 하루종일 법률조항을 따지던 김 전 대법관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잘 견뎌낼까, 제발 힘들더라도 잘 참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김 전 대법관은 그런 국민의 자그만 소망과 기대를 하루아침에 저버렸다. 예순이 넘은 그는 얼마나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걸까. 얼마나 더 큰 차를 타고, 얼마나 더 좋은 옷을 입고 싶은 걸까. 도대체 얼마나 더 서민을 희생시키고 혼자만 배불리 먹고 살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그들 노부부에게는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있어야 만족스러운 걸까. 그의 변심이 우리를 너무나 서글프고 허무하게 만든다.

출처 : 노년시대신문 오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