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개인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지역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뚜렷한 남성과 여성의 차이 중 하나가 수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사망률은 탄생시기부터 생애 전주기를 걸쳐 그 어느 시점에서도 여성의 사망률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남녀간 차이는 질병 발생에서도 보인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가면역질환을 더 빈번하게 앓고,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고혈압에 더 잘 걸린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는 성별을 결정하는 성염색체에 그 답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구조적, 기능적 단위는 세포다. 한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수를 정확하게 알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개략적으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총 1조~10조개 정도일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한 사람 몸에 존재하는 각각의 세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총 46개의 염색체가 존재한다. 이들 염색체는 숫자로 구분을 하며 가장 큰 염색체가 1번이고 가장 작은 염색체가 22번이다. 그리고 숫자가 아닌 문자로 X, Y라는 염색체가 있다. 이들 두 염색체를 문자로 따로 표시한 이유는 이들 염색체의 조합에 의해 성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X와 Y 염색체를 성염색체라고 부르고, 나머지 숫자로 구분된 염색체는 상염색체라고 한다. X염색체가 두 개인 경우는 여성이 되고, X염색체 한 개와 Y 염색체 한 개를 가지게 되면 남성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1번부터 22번까지 상염색체와 X 염색체, 총 23개의 염색체를 받게 되고, 아버지에게서 또 다른 1번부터 22번까지의 상염색체와 경우에 따라서 X 또는 Y 염색체를 물려받아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결국 인체는 바로 46개의 염색체를 가지는 하나의 세포에서 형성된 것이고, X 그리고 Y 성염색체 조합에 의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XX를 가지는 세포는 발생하면서 여성 생식기만 만들어 여성이 되고, XY를 가지는 세포는 발생하면서 남성 생식기만 만들어 남성이 되는지는 과학적으로 충분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단지 Y 염색체에는 남성 생식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Sry(Sex determining region, Y chromosome) 유전자가 존재하고 이 인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유전자가 없으면 남성 생식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대신에 여성 생식기가 만들어 진다. 이런 성염색체의 차이가 이차적으로 다르게 생성된 생식기관(남성은 정소, 여성은 난소)을 통해 다른 종류의 호르몬(남성은 주로 테스토스테론, 여성은 주로 에스트로겐)이 체내에 만들어져 이들의 영향으로 남성과 여성의 각기 다른 신체적 특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Y 염색체는 남성의 수명을 깎아 먹으면서 어떤 이점을 남성에게 남겨 놓았을까? 최근에 야생에서 살고 있는 동물 비비(또는 개코원숭이) 연구 결과가 수컷의 생리적 특성과 사회성이 서로 상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비는 무리를 지어 사는 유인원이다. 무리중에는 일종의 우두머리가 있고, 이를 알파 수컷이라고 부른다. 알파 수컷은 다른 낮은 계층에 있는 수컷에 비해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을 과량 분비하고 있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분비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호르몬이 높게 되면 면역기능은 반대로 저하되는 것이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서 보여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비비 알파 수컷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면역기능이 오히려 매우 높아서 상처가 나도 낮은 계급의 수컷보다 매우 빠르게 회복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알파 수컷은 상당히 호전적이고, 왕성한 생식 활동도 보여주고 있다. 비비와 같은 동물은 그 사회성에 따라 생리적 특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동물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결정된 남성의 특성이 생리적 이점이나 수명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가는 재미있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해 이러한 과학적 연구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는 조선시대 알파 남성인 왕과 내시의 수명에 대한 연구결과다. 흥미롭게도, 조선시대 왕의 평균수명은 약 47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반면 상류층의 양반은 왕보다는 좀 더 오래 살았으며, 그 평균 수명이 약 55세 정도였다. 남성의 생식기관인 정소를 잃어버린 내시는 태생으로 보면 천민이었고, 지위로 보면 양반에 버금가는 계급이었다. 그런데 이들 내시의 평균 수명이 모든 남성 계층보다 훨씬 높은 약 70세나 된다.

우리나라 고서에 보면 조선시대 내시의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그들의 외향과 성향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내시는 유방과 둔부가 크고, 수염이 나지 않으며, 대머리가 될 소지가 거의 없었고, 살이 통통하게 쪄있고, 목소리가 여성처럼 가늘고 톤이 높았으며, 피부도 여성처럼 매우 희고 깨끗했다고 한다. 또한 내시는 말이 많았고, 감정이 예민하며, 눈물과 공포심이 컸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회 구조에서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거의 전능적 지배력을 가진 왕과 매우 수동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것인 내시간에 존재하는 큰 수명 차이는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정소를 잃고 남성 호르몬이 없이 발달된 내시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인가, 아니면 내시가 처한 사회적 위치에 의한 사회적 특성의 변화에 기인하는가? 아직은 과학적으로 이러한 다양한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이 수명과 어떻게 관계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 가운데 건강과 장수를 결정하는 비밀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철구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생명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