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누룽지를 끓여 먹기 시작한 것이 지난 겨울부터이니 족히 몇 달 되었다. 한여름인 7월과 8월만 빼고 한 달이면 거의 보름은 아침에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간단히 물 부어 보르르 끓이고 약한 불에 조금 놔두면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위에 부담이 적어서 일찍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최근에 우리 집에서는 누룽지로 인해서 오는 정 가는 정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남편이 일하는 회사 식당에서 주방을 담당하던 분들이 버리려던 누룽지를 얻어 오게 된 것이 첫 번 계기가 됐다. 식당에는 주기적으로 구청 환경 위생과에서 검사를 나온다고 한다. 그 날도 검사가 예정된 날인데 생각보다 남은 밥이 많았다. 식당에 음식이 많이 남아 있게 되면 위생과에서 제시하는 보건위생 기준에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 남은 밥을 처리하느라 말려서 누룽지를 만들어 두면 누룽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져가곤 했었다. 그 날은 가끔 누룽지를 가져가던 사람이 회사에 오지 않아서 검사원들이 당도하기 전에 버리려던 것을 남편이 보고 얻어 오게 된 것이다. 누룽지를 좋아하는 남편의 입이 함박만큼 헤 벌어져서 불룩하고 꾸깃꾸깃한 20kg짜리 쌀 봉지를 내민다. 이게 뭔지 알아? 아마도 3kg은 족히 될 만한 누룽지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요즈음 시장이나 마트에는 포장되어 나오는 누룽지 값이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가마솥을 걸고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짓던 때는 아주 옛일이고 연탄불로 밥을 지어 먹던 시절도 까마득해 수 십 년 전 일이 되었다. 전기와 액화 가스가 취사와 난방의 수단이 되고 나자 조리 기구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일하는 주부로 살아오면서 살림살이에 소홀하다 보니 새카맣게 태우지 않고도 밥을 잘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전기압력밥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압력밥솥도 있지만 역시 자칫 하면 밥을 태운다. 게다가 요즈음의 전기밥솥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른다.

고구마, 감자를 찌는 것은 물론 식혜도 하고 약식도 하고 갈비찜까지 척척 해낸다. 그러니 쓸데없이 쌀 낭비 해 가면서 누룽지 눌리는 것은 당연히 비효율적인 기능이 돼 버렸다. 언제나 윤기 자르르하게 맛있는 밥을 대령 하면서 ''백미 취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잡곡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묻지 않아도 제때 제때 다 알려 준다. 누룽지 같은 건 생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였을까? 비닐봉지에 담긴 누룽지가 시장에도 나오고 마트에도 선을 보였다. 그러더니 이젠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고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식품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또한, 젊은 엄마들 사이에는 아기들 영양 간식으로 견과류를 넣어 맛있는 누룽지 굽는 방법이 은근히 유행이다. 과자는 달고 짜고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많으니 내 아이 건강은 내가 지키겠다는 바람직한 유행이다.

예전에도 노릇노릇하게 잘 눌은 누룽지 위에 하얀 설탕 솔솔 뿌려서 바구니에 담아 두면 서로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다툼질하는 어린 코찔찔이들의 일등 간식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옛 여인들에게는 질리도록 먹은 누룽지가 아니었을까? 개밥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른 상에 올리고 남은 누룽지는 으레 며느리 몫이 되었다. 가축 먹이로 주고 밥 먹으라는 시어머니의 배려가 없으면 허구한 날 물 부어 불린 누룽지가 여인네들의 끼니였던 시절도 있었다.

요즈음 일부러 밥을 눌려서 판매용으로 생산되는 누룽지는 당연히 노동의 값과 시설비가 보태져서 비싸진다. 시장에서는 통상 200g 단위와 500g 단위 포장이 판매되는데 그 가격이 2,500원, 5,000원이다. 여인네들이 그냥 비닐봉지에 넣어서 파는 것은 생산자나 그램 수 표시 없이 한 봉지에 5,000원을 받는데 얼추 500g짜리와 그 양이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상표의 로고를 멋지게 만들어 붙이고 생산자 표시를 한 것은 같은 그램 수에 1,000~ 1,500원을 더 받는다. 물론 생산자나 생산지가 표시되니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본다. 생각 없이 몇 번 누룽지를 사서 먹다 보니 의외로 값싼 식품이 아니라는 생각에 쌀값과 비교를 해봤다.

5,000원짜리 6개를 사면 3만 원이다. 그리고 쌀 10kg도 생산지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3만 원 대이다. 우리 집 쌀 소비 패턴은 보통 강원도 철원 쌀 5kg에 혼합 잡곡 3kg과 찹쌀을 추가하는데 대략 4만 원대, 그 정도의 쌀을 구매하면 밥만 먹어도 한 달 조금 더 먹는다.

그런데 누룽지는 500g으로 아침 식사로만 4회, 3만 원어치로 24일간 먹을 수 있는 양이 된다. 게다가 제조사에 따라 가격대가 다르니 상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이라면 쌀값보다 더 비싸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던 차에 그렇게 푸짐하게 누룽지를 얻어오다니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게다가 얻어온 누룽지는 맛도 냄새도 사온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누룽지는 아무래도 쌀이 덜 좋은 것 같았다. 얇고 바삭바삭 하지만 풍미가 덜했다. 아마도 묵은 쌀이나 끈기가 적은 수입쌀로 생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결에 버리려던 누룽지를 얻어왔지만 맛있게 잘 먹고 있으니 고맙다는 인사나 전하라고 50개들이 커피믹스를 하나 사서 보냈다. 그렇게 인사차 보낸 커피 때문인지 그 뒤부터 가끔 누룽지가 남편 손에 들려온다. 소소하게나마 나도 인사를 거르지는 않는다. 누룽지를 받는 날이면 남편은 아직 미혼인 젊은 영양사에게 살짝 물어본다고 한다.

"이번에는 뭐 사다 줄까?"

올여름은 더위에 누룽지 만드느라 애쓴 고마움도 있고, 잡곡이 듬뿍 들어있는 품질 좋은 누룽지라 반갑고, 뜨끈한 누룽지 훌훌 불어 떠먹으며 덤으로 얻는 추억들이 좋아서 훨씬 양이 많은 아이스커피를 사서 보냈다. 백 세 시대의 도래로 노년에 든 많은 사람이 한결같은 생각을 한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 그렇지 않다면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건강식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운동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누룽지도 건강 식품 중의 하나로 세간의 관심을 얻고 있다기에 검색을 통해 알아보았다. 정확한 과학적 분석이 있었는지의 유무는 알 수 없지만 모두 전문가다운 견해들이라 그 중 정리가 깔끔한 것을 옮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