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엔 돌봄 서비스… 사망 땐 염습에서 유품정리까지

양천구도 유사한 사업… 서대문구는 외국인에도 혜택

지난 8월 2일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에서는 연고가 없이 사망한 유복희(87) 어르신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평생 미혼으로 살아온 유 어르신은 형제자매가 모두 사망했고, 조카들과도 20년 이상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염과 입관은 18년간 자원봉사를 해온 조광제(61)씨 등 봉사자들이 맡았다. 빈소에는 상계1동 주민복지협의회장과 통장, 복지관 직원 등이 찾아와 문상했다. 고인의 희망에 따라 노원교구협회 조성규 목사가 장례예배를 진행하는 가운데, 안철식 노원구 교육복지국장 등 6명이 운구를 하는 등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을 한 뒤 유택동산에 산골을 하는 것으로 이날 장례 절차는 모두 끝났다.

서울시 노원구는 지역 봉사단체와 함께 올해 4월부터 홀몸 노인의 장례식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여정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무연고 어르신이 맞이하게 되는 ‘고독사’로부터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지역 공동체 차원의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홀몸 어르신 생전에는 본인이나 주변 사람의 신청을 받아 돌봄 대상자를 선정한다. 돌봄 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되면, 건강이 좋은 분에게는 웰에이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엔 재가복지 서비스, 건강이 악화되면 호스피스를 파견하는 등 단계별 서비스를 진행한다. 돌봄을 받던 어르신이 사망하면 동 주민센터가 중심이 돼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가동해 장례진행과 추모식, 염습·발인·운구에서 유품정리까지 일체의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례식장은 원자력병원, 상계백병원, 을지병원의 협조를 받는다. 노원구는 현재 3개 병원과 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지난 7월 2일 원자력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기초생활수급자 김 모씨 장례식은 노원지역사회가 함께 한 ‘아름다운 여정’ 1호였다. 노원구 어르신복지과 관계자는 “현재 ‘아름다운 여정’ 대상자 신청을 받고 있으며, 아직 제도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 신청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고독사는 가족해체 및 빈곤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연계망을 구성해 홀몸노인을 돌보면 고독사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어르신복지과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이러한 장례서비스를 실시하는 지자체는 노원구 외에 양천구, 서대문구, 은평구 등이 있다.

양천구도 무연고 홀몸노인에게 돌봄과 연계한 장례지원을 시작했다. 무연고 노인의 정확한 현황 조사를 벌여 생전에는 말벗과 호스피스 등 각종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돌봄을 받던 노인이 숨지면 생전에 작성한 임종 노트를 바탕으로 사망자의 존엄과 품격을 유지하는 장례식을 치른다.

양천구는 현재 이대목동병원, 홍익병원, 양천효병원 장례식장 및 대한장례인협회와 협약을 맺어 영안실과 빈소, 수의와 상복 등 장례용품을 제공받고 있다. 3대 종교단체는 추모의식을 맡고, 기업봉사단과 노인돌보미는 각각 상주와 조문객 접대를 담당한다. 이런 절차에 따라 지난 8월 9일 신정동 양천효병원에서는 고 조순명(68)씨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서대문구는 지난 5월 28일 연고가 없는 사람들의 장례를 돕기 위해 마을장례공동체 ‘두레’를 결성했다.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두레를 중심으로 지역사회복지협의체와 동장, 통장이 ‘지역 상주’가 돼 장례식을 치른다. 상주는 안치·추모 공간을 제공한 동신병원과 여러 협력기관과 함께 영결식을 치른다. 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한 유해는 파주시 무연고 추모자의 집까지 동행한다.

서대문구는 이 ‘두레’를 통해 7월 29일 고려인 무연고 사망자 치엔(Chjen)씨의 영결식을 진행했다. 치엔씨는 지난 3월 방문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고려인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후 세브란스 병원은 치엔씨의 외국인등록증을 확인해 주한 우즈베키스탄 영사관을 통해 연고 확인을 했지만 무연고자로 판명됐다. 무연고 사망자는 사체가 있는 곳의 관할 구에서 처리하도록 한 관련법에 따라 서대문구에서 사체를 인계받아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장례식에서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혼자인 무연고 사망자의 외로움을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치엔씨를 통해 우리 동포인 고려인의 외로움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