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마을이동도서관, 6월부터 화~일요일 낮 시간 운영

공원 찾는 노인들에 건전한 문화 확산 위해 시작

어르신들이 도우미로… 배회하는 사람들에 이용 권유

오랜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종로의 탑골공원이 최근 성매매·불법노점상 및 사기 판매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탑골공원에 수도권 지역의 어르신들이 모여 들면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및 사기 등이 판을 치고 있는 것. 탑골공원이 공원으로서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서울노인복지센터는 탑골공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탑골공원이 전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6월 26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탑마을이동도서관’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3시 탑골공원에서 운영되는 탑마을이동도서관은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공원을 찾는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도서를 대여해주고, 도서문화를 전파, 탑골공원에 건전한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기획됐다.

도서대여뿐만 아니라 서로의 책을 공유할 수 있는 ‘도서바자회’, 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북콘서트’, 책 속의 좋은 글귀를 전할 수 있는 ‘도서캠페인’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동도서관을 관리하는 도우미는 노인일자리로 선발돼 4월부터 직업교육을 받아온 어르신들이 도맡고 있다. 선발된 어르신들은 5시간씩 주2회 일하며, 월급 20만원을 받는다. 어르신 도우미들은 책임감 있고 주체적인 ‘책문화보부상’으로 활약하며,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책을 읽고 대여할 수 있도록 홍보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정균(79) 어르신은 도우미로 활동하기 전부터 다독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조정래의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 등을 재밌게 읽었다는 어르신은 나이가 들수록 독서를 습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젊은이들과 노인들 간에 소통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럴수록 노인들이 독서를 통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지식, 감각을 쌓아야한다고 봐요. 그래야 청년들과 대화도 통하고, 친해질 수 있는 거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는 날까지 책을 읽는 좋은 습관으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요.”

오 어르신이 이동도서관 도우미에 지원한 것도 늘 책 가까이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동도서관에서 도우미로 활동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 특히 노인들에게 독서를 권장하고 싶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독서를 권하며, 독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오 어르신에게는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오정균 어르신과 오랜 친구이자 역시 이동도서관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임영순(79) 어르신도 독서의 중요성에 그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은 뒤에는 시력이 안 좋아져서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해요. 그래도 노력은 해요. 아이들을 키울 때도 독서만큼은 늘 강조했죠. 그래서 딸아이는 밤을 새고 책을 보기도 했어요. 책이 배움의 기본이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죠.”

그는 도우미 활동을 위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요즘의 청년들을 보게 됐다. 그러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스마트폰 등 각종 IT기기가 대중화되면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보는 젊은이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슬쩍 들여다보면 게임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 어르신은 이처럼 씁쓸한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이동도서관 도우미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 책을 읽는 문화를 확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도우미 어르신들의 뜨거운 열정과는 달리, 아직까지는 탑마을이동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기대만큼 많지는 않다고.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막 한 달을 넘겼을 뿐인데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어르신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야외활동이 줄어든 탓이다. 자연히 탑골공원을 찾는 이도 감소했고, 공원을 찾는 이들도 오래 머물지 않아 홍보가 어렵다.

임 어르신은 “도우미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찾아오는 분들만 찾아오는 경향이 있어요. 몇 분은 얼굴까지 익혀 인사를 나누게 됐는데,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책을 빌리고 읽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지 않아 아쉬워요”라고 설명했다.

오 어르신은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말한다.

“탑골공원에 찾아오는 어르신들은 비교적 활동적인 노인들이에요. 그래서 무슨 책을 보는지 살펴보면 여행서가 많아요. 또, 코미디나 재밌는 얘기 거리가 담긴 가벼운 책도 선호가 높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의욕적이세요. 이런 태도나 분위기가 아직은 책을 멀리하고 있는 노인들에게도 점차 퍼져나갈 거라고 믿어요.”

오 어르신은 공원을 배회하는 어르신들을 직접 이동도서관으로 데려와서 책을 권하기도 한다. ‘태백산맥’처럼 훌륭한 소설도,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불경도 있다며 홍보에 목소릴 높인다.

그가 이렇게 활동에 열심히 임할 수 있는 이유는 이동도서관 도우미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정말 좋은 문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평소 이동도서관을 즐겨 이용한다는 한 어르신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래 노인들만 있던 탑골공원이 조금 새로워진 느낌입니다. 책을 늘 보던 사람이 아니어서 책을 빌려보는 게 아직은 멋쩍고 쑥스럽지만 그냥 이동도서관이 찾아오는 것 자체로도 반가워요.”

또 다른 어르신은 “이동도서관이긴 하지만 주제별로 책이 목록화되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개선점을 말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이동도서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기획·추진한 서울노인복지센터 신용훈(27) 복지사도 추이를 지켜보며, 이동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아직까지 이용자가 많지 않은 건 아쉽죠. 저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여서 미흡한 부분도 있고, 탑골공원을 찾아주시는 분들의 어려운 상황도 있어요. 예를 들면, 공원을 찾아오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문맹이세요. 또, 글을 읽을 줄 알아도 노안으로 인해 시력이 안 좋은 경우도 많고요. 또, 일반 시민들도 책을 빌리러 오는 게 아니라 호기심 차원에서 잠시 훑어보고 가는 일이 많습니다.”

탑마을이동도서관은 앞으로 시민들의 도서 대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여 및 회원가입 절차를 더욱 간소화할 예정이다. 또, 하루에 한정됐던 대여 기간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신 복지사는 “이동도서관을 장기적인 사업으로 가져가서 탑골공원만의 특색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탑골공원에서 이동도서관이 정책되면, 또 다른 공원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