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숙제
뇌는 정체나 본질만 변화시키지 않는다. 척척 맞았던 몸과 마음, 생각과 행동의 중간에서 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심지어 몸과 마음을 따로 놀게 할 때도 있고, 뇌의 전달 과정에서도 가끔 장애물이 나타나는지 치매 초기라는 말도 듣게 한다.끊임없는 연구에도 그 끝을 알 수 없어 소우주라는 칭호를 받았음에도 뇌도 별수 없는 모양이다. 늙으면 판단이 흐려져 갈팡질팡하니 말이다. 총기 있게 보인다던 눈도, 명민하다는 소릴 듣게 했던 기억력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있다.
전화와 문자를 자주 주고받는 사람 중에는 연배도 있지만, 여든과 일흔을 목전에 둔 분도 있다. 요즈음 내 위의 두 분 말씀과 행동에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 작은 실수를 나이 많으므로 합리화하는 거야 그렇다 치고, 했던 말을 처음 하는 양 반복할 때는 듣기 거북하다. 전철을 반대로 타기도 하고, 몇 정거장 더 가기도 한다며 허탈해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같은 행동을 왜 하느냐고 하면 ‘당신도 내 나이 돼 보라는’ 식이다.
하긴 내가 그 나이 돼 보지 않았으니 입찬말할 처지도 아니지만, 실수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연세 많은 분은 아랫사람들에게 폐라도 될까 무척 조심하는 게 공통점이라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도 안 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다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해도 걷잡을 수 없이 휘둘리지 말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평지에서도 발 헛디디는 횟수 늘어나고, 내 몸무게 반의 반짜리를 들고도 허리가 뻑뻑해 며칠 고생하더라도 스스로 뒷걸음질치고 늙은 티를 내면 세월이란 놈이 얼마나 깔보겠는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어머니가 하시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다고 기막혀하고 있는데, 웃을 일이 아니다. 지레 ‘나는 늙었어.’ ‘나는 뒷방 늙은이라 어쩔 수 없어’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나이가 많은 나무로 만든 악기일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고 한다. 나무가 오래되면 마를 때도 바르게 마르고, 만들 때도 고집을 부리지 않아 소리가 편하고 밝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비바람 눈보라 속에 생명을 부지하면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얻어낸 결과일 것이다.
나도 태어난 지 60년이 넘었으니 나무로 치면 나이테가 많은 나무가 분명하다. 줄이 한 가닥 끊어졌거나 음의 폭이 좁아졌다 해도, 한때 조자(調子)했던 경험이 있는 악기임이 틀림없다. 예전 같지 않으나, 어떻게 하면 맑은소리를 내면서 뒤틀린 마음을 바로잡아야 할지 그게 노후의 숙제로 남았다.
노후의 숙제를 쉽게 하려면 변해야 한다. 퇴화하는 뇌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글감이 떠올라 옮겨보려고 머리맡에 연필 찾다가 끝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끙끙대는 건망증과도 친해져야 한다. 완벽하게 정리정돈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집안이 어수선해도 젊었을 때와 비교하여 공허해하지 않을 줄 알아야 일신이 편안하다. 삶에는 완벽과 정답만 있지 않다. 특히 노후에는 유연과 적응이 필수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조자(調子): 소리의 높낮이가 길이나 리듬과 서로 어울려 이루어지는 음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