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은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날한의원 원장
개인적인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독자 여러분에게도 “여름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라고 물으면서 글을 시작하
려던 참인데, 참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어집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휴가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오
르네요. 무엇보다 휴가도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인 많은 사람들과 또 광장과 천막, 송전탑, 철탑에서
자신의 일터와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느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쓰고
있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올해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하는 고민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 여름 휴가가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교통 체증과 비싼 성수기 요금, 갈만한 곳은 어디 가나 사람들이 북적이고, 날씨가 엉망
이어서 계획이 틀어지고... 결국 ‘집 나가면 고생이다’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휴가가 우리에게 정말 휴식을 줄까
요? 오히려 멀리 여행갈 계획을 내려놓고 그동안 바쁜 일상에 치어 돌보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휴가를
보내는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몰린 수십만 명의 피서 인파ⓒ뉴시스
돈 모아서 휴가 가고, 휴가 가기 위해 돈 모으고
한 달간 긴 여행을 떠나는 프랑스 같은 유럽의 바캉스는 산업적 호황을 누리던 70년대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
우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죠.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이 소비할 거리로서 투어리즘이 하나의 큰 산업으로 발
달했지요. 어찌 보면 자본주의에서 휴가는 노동자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휴식을 빌미
로 더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가를 위해 돈을 모으고 일하고 또 소비하는 반복되
는 패턴 속에서 제한된 위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그렇게 돈을 모
아두지 않으면 휴가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저는 의료생협에서 일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상상하고 있는 하나의 계획이 있습니다. 어디서든 쉽게 쉼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휴식의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너무 멀지 않은 자연이 좋은 곳을 찾아 조합원들의 출
자를 모으고, 함께 운영할 뜻있는 자원자들을 모아 작은 쉼터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에 살
아가다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일종의 재활센터 같은 곳 말입니다.
진료를 하다보면 정말 그런 기능을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과도하게 일하느라
지쳐있고,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육아와 살림에, 아이들
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에, 어르신들은 돈이 없고 몸이 아파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걱정이 많습니다. 사회 자체
가 너무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물론 사회 자체가 올바르게 변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그렇기 위해서라
도 우리 자신이 희망을 잃고 지쳐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를 위한 치유공간으로 만들어진 ‘와락’의 사례처럼, 전문가들이 결합하고 자원봉사자들
이 재능을 기부하며,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정말 그러한 곳들이 더 많이 생
겨나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의료생협이 그러한 쉼터를 만든다면 여기에는 몸과 맘의 회복을 위한 의료적인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
어야 하겠지요. 최근에는 시중에도 소비적인 휴가를 대신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기는 합니다. ‘힐링’이라는
말의 유행과 함께 템플스테이처럼 며칠간 요가, 명상, 호흡법을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
하는 쉼터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치유와 힐링의 공간, 상상만일까요?
상상을 해 봅니다. 한 환자가 의료생협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직장에서의 극심한 스트
레스로 우울증도 있고 몸도 많이 쇠약해져 있군요. 의료진은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쉼터에 가서 며칠간 몸을 회
복할 것을 권합니다. “쉼터요? 그게 뭔가요?” “가 보시면 알 겁니다”
경기도 양평의 국립산음자연휴양림ⓒ뉴시스/산림청
쉼터를 찾아 가 보았더니 산 가까운 곳에 작은 건물이 있군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상담 원장은 “당신은 무얼
잘 할 수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를 묻습니다. 거기에 따라 자신에게 역할을 주는 편입니다. 여기엔
돈만 내면 휴식의 시간과 공간을 보장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맞게 쉼터 유지를 위
해 꼭 필요한 노동도 해야 하고, 밥도 함께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도움이 더 필요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재
능을 활용하거나 힘을 써야 하고, 저녁이면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서 자
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들을 나누며 집단 상담과 치유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나 진지하기만 한 것은 아니
고 무엇보다 음악과 즐거움이 있어야겠지요.
물론 여기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일하며 키운 텃밭에서 채소를 활용한 건강한 식탁이 차려져 있을 것입니다. 명
상과 요가, 기체조의 전문가가 프로그램에 결합되고, 또한 종종 단식이나 이완요법 심리상담 등이 시행되면서
치유를 위한 의료적 도움이 결합될 것입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정신적으로도 회복된 노동자는 다시 일터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내년
에 다른 휴가 계획을 갖기보다 다시 쉼터를 떠올립니다. 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싶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울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쉼터 운영에 참여할 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설이 현실적으로 잘 운영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상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의료생협
적인 ‘힐링’의 모델은 단순히 개인의 몸과 마음의 회복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힐링은 오히
려 타인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개개인의 여
가선용 상품을 통해 소비되는 힐링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 모순덩어리의 한국 사회를 살면서 함께
위로 받고 서로를 배려하는 즐거운 치유의 공간을 만드는 일, 앞으로 의료생협을 통해 하고 싶은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