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중반에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문화센터에서 시작했다가 몇몇 선생님을 거쳐 지금은 1970년대 유명했던 밴드인

‘키보이스’에서 드럼을 치시던 노광일 선생님 밑에서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신체적 여건이야 비록 남보다 못하겠지만 남보다 두 세배 노력한다면 뒤지기야하겠는가

싶어, 야무진 목표까지 정해놓았다. 환갑 때 록밴드의 리더가 되어 연주회를 갖는 것. 야

무진 희망일지라도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며칠 전, 드럼 악보가 필요하여 선생님을 만나러 서울로 나들이를 갔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지하

철은 만원. 약속장소인 종로 3가에서 전동차가 멈추니 마치 종점이라도 되는 듯 ‘우루루’ 지하철 한 칸이 모두 들

썩였다. 한 눈에도 모두 육십 중반은 훌쩍 넘기셨을 법한 어르신들.


‘오늘 이곳에 어르신 잔치라도 있나…?’, 아니란다. 아침마다 무슨 군단이라도 몰려오듯이 어르신들이 이곳으로

집합하신다는 선생님 말씀이다. 근처에 탑골공원도 있고, 어르신들이 시간 보내시며 노시기 좋은 값싼 당구장이

며 콜라텍이며 각종 놀이공간이 모여 있는 국일관도 있고, 어르신 입맛에 맞는 식당이나 간단한 의료기기 파는

곳까지 다 있어 그런가 보다.


이곳이 ‘어르신들의 홍대 거리’인 셈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홍대 거리’는 있지만 사실상 어르신들을 위한 거리는

없다. 일 년에 한번인가. ‘실버문화 페스티발’이라는 홍대거리에서 열리는 어르신 잔치는 있다. 하지만 그곳도 그

날 하루뿐이다. 어르신들이 주인인 거리는 없는 셈이다.

세월 가며 변하는 육체와는 무관하게 어르신들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을 잘 풀고 즐겁게 살

아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 어르신들이 건강해야 젊은이들에게 부담도 안 주고, 그래야 나라도 평안하다.

급속하게 노령화되어가는 우리나라. 이참에 ‘노인의 거리’ 하나 만들면 어떨까.


그곳에 가면 비슷비슷한 나이에 비슷비슷한 생각과 비슷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같이 즐겁

게 놀 수 있는 거리. 나이 들었다고 소외시키거나, 스스로도 주눅 들지 않는, 노인들이 주인인 거리. 일 년에 한번

딴 곳까지 가서 손님 대접받으며 놀다오지 않고도 365일 놀 수 있는 거리.

탑골공원 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어르신들. 돈이라도 몇 푼 있으신 분들은 콜라텍에서,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

내시지만 그나마 없으신 분들은 이곳으로 모이신다고 한다. 우리를 낳고 키우고 나라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어르신들이, 잔뜩 웅크리고 주눅 든 모습으로 여기저기 술판이며 장기판이며 늘어놓으신 모습. 그리 행복해 보

이지 않았다.


‘노인의 거리’가 만들어진다면 구태여 홍보할 필요도 없다. 아침이면 노인들이 저절로 모여들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로 재정비하고, 어르신들이 술에 의지하지 않도록 무료로 즐길 재미난 구경거리, 먹

거리, 공원 잔디밭에서의 요가나 택견 등의 무료 강습만으로도 시작으론 충분하다. 그러나 이왕이면 외국인 관

광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제대로 된 ‘노인의 거리’를 만들자.


서울 정비하는 데 쓸 돈 좀 뚝 떼서 ‘노인의 거리’를 만들자. 그렇게만 된다면야, 노인 질병 때문에 나라에서 지출

하는 의료비가 반으로 확 줄 거다. 



출처 : 노년시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