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Suicide)은 살인(Murder)이다.

이탈리아의 20세기 철학자 카를 로퍼는 '모든 삶은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자살이

유행인지 자고나면 자살 소식이다. 한 해에 8,631명 하루 24명꼴로서 10만명당 8.5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앞

질렀다니 이는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명예나 부귀를 막론하고 사람이면 모두 걱정(문제)을 지니고 살기 마련인데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살

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성서에, 태초에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걱정 없이 살았다 하나 그들도 파계(破戒)의 원죄(原罪)를 범한 걸

보면 역시 무슨 걱정이 있었거나, 아니면 걱정없는 생활이 너무 무료(無聊)하여 상식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욕망이 있었나 보다. 거기에서 파생한 걱정이란 DNA는 인간의 혈액속에 영원히 흐르면서 내

성균으로 바뀌었으나 그래도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을 삶의 이유로 알고 열심이 살고

있다.

역설적으로 만일 사람에게 걱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정말 큰 걱정이다. 왜냐면 걱정이 없다는 것은 곧

생활이 없다는 것이고, 생활이 없다면 생명도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어 걱정하고 그래서 뛰고 달리

는 모습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불만에서 기인(起因)되는 걱정이 계속 이어질 때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노력

하는 것이 곧 우리네 사람의 상식이 아닌가?

앙리 샤리엘 작 영화 파피용에서 소극적인 드가와는 대조적으로 파피용은 삶의 의지를 매우 극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감옥에서 탈출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란 글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아

는 사람'에 대한 경이로움은 위대하다 못해 눈물이 난다. 모두가 트라우마를 현명하게 잘 극복한 본받아야 할 좋

은 예이다. 고로 걱정은 곧 나를 보전하기 위한 생활의 영위(營爲)이며, 투쟁과 저항의 요인이며, 수단이고 방법

인 것이다.

즉 생활의 문제이며 진보의 동력자원인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표에 따라 그때그때 지혜를 터득하여 마인드 콘트롤을 잘 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인생의 행로'는 종교인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으나, 그 작품의 밑그림에는 충분히 긍정적인 일

리(一理)가 깔려 있다고 본다. 때로는 눈물이 아름답듯이 그 허무를 깨치는 부처의 매력은 또 얼마나 멋진가!

깨쳤거든 그 만족의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또 다른 걱정을 찾아 삶의 재료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

전장에서 과다출혈을 한 군인은 탈수현상으로 물을 갈구한다. 그 때 물을 충분히 주면 그는 즉사한다고 한다.

그것은 생리적 부작용이 아니라 강렬하고 지속적인 물에 대한 욕구가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붙잡고 매달려 있다

가 만족으로 그만 긴장이 이완(弛緩)되어 그 생명의 정신적 끈을 놓아 버린 때문이다. 만족의 두 번째 부작용은

오늘날 선진국일수록 자살 그래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체(時體)말로 등 다숩고 배부르니까 개똥철학이

나오는 것이다. 괜히 인생문제를 심각하게 따지려 들고 그래서 Nihilism(허무주의)이나 Pessimism(염세주의)

에 자기를 몰아넣어 비극적주인공으로 자신을 편집(編輯)하여 자학(自虐)하다가 그만 자신을 사사오입해 버리

고 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화려한 연예인도 뭐가 부족하여 자살하는지 정말 기막힌 NG다.

속담에 '돌아가는 물방아는 얼 틈이 없고, 바쁜 벌은 근심할 틈이 없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에러를 범하기 전

에 왜 더 깊은 곳의 철학은 보질 못하는가? 만족의 속성(屬性)은 운명을 소급(遡及)하는 고장난 타임머신이다.

싸르뜨르는 "운명은 던져진 주사위"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회복(恢復)을 철저히 주장한 실존주의자인 그가 자

기 운명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운명은 자기선택이 아닌 신에 의해 피조(被造)된 것이라는

뜻이다. 즉 인간은 운명을 신으로부터 차용한 채무자이므로 그 생명의 이자는 못줄망정 본전이라도 착실히 갚아

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절망이나 허무를 극복하는데 진정한 의미를 두어야 하고, 자살로 신에게 본전

마져 떼 먹는 짓은 절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부모, 자식, 남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것은 신의 자산(資産)을 엄청나게 절도(竊盜)질하는 셈이니 운명

과 싸워 이겨야지 싸움에 지면 당신은 인류의 왕따다. 여기 19층 APT 테라스에서 어떤 이가 막 투신하려는 순

간, 옆에서 누가 목에 흉기를 드리대고 무작위로 "너 은행 강도지?" 하고 엉뚱한 위협을 했다면 그 자는 어떻게

할까? "좋소 기왕 죽으려는 몸이니 빨리 내 목을 치시오" 이럴까? 아니다.

그는 각오한 죽음보다 새로 임박한 죽음에 대해 오히려 살려는 의지를 어떤 반항적 행동으로 나타낼 것이다.

얼핏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자살병을 치료하는 동종요법(同種療法)인 것이다.

그러나 "젊은 이 참으시오." 하고 말린다면 그는 틀림없이 "놓으시오." 하고는 그만 뛰어 내리고 말 것이다.

그런 식의 만류는 자살을 재촉한 셈이 되고 만다. 요즘 글로지릴이란 자살 예방약까지 나왔다니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다. 의지를 배반한 어떤 약인들 과연 효험이 있을까!  오늘날 고민의 나라라고 하는 이라크며 아프카니스

탄을 보라. 죽음의 사면초가에서 살아남으려는 걱정과 씨름하기에 여념이 없을 뿐 자살할 틈이 어디 있나.

우리는 6.25의 여과(濾過)를 통해서 그들을 동정(同情)할 수 있다. 성(性)보다 더 끈덕진 생의 욕망은 터지는 포

화속에서도 한 쪽 다리가 잘린 체, 피묻은 바짓가랑이를 한 손으로 움켜 쥐고 손톱이 뒤집혀 다 빠지도록 언덕을

기어 오르는 모습은 신에게 빚(?)을 갚기 위한 처절한 최선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피를 팔아 빵을 사먹고라도 살아 보려는 모습은 비겁이 아닌 존엄의 모습인 것이다.

무절제가 빚은 빈곤(貧困)적 자살, 이것은 가장 유치하고 부끄러운 자살의 샘플이다.

근래에는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 동호회까지 생겼고, 한 술 더 떠 자살약까지 팔아 이익을 챙기는 일까지 있다니

세상 모두가 막가파 사상의 피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자살은 영원한 빚쟁이로 가는 길이니 이 글이 얼마나 설득

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