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전 회사원 김영호(가명)씨는 지난해 병원을 200번이나 찾았다. CT, MRI도 찍고 내시경만도 후두, 위, 대장, 심지어 난이도가 수술과 같다는 기관지까지 모두 받았다. 검사결과 정상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나 위암, 인후두암, 폐암, 뇌종양 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 차례 병원을 옮겨 조직검사만 다섯 번을 받은 끝에 겨우 마음을 놓았다. 병원을 다니느라 직장도 관두고 결혼상대자와 파혼까지 치달은 김씨.

현재 무직자인 김씨는 반년째 피부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얼굴에 내려앉은 딱지가 피부암이라는 확신을 갖고 동네병원만 3곳, 2급 종합병원 2곳을 가봤지만 의사의 진단은 단순 모낭염이었다. 다시 병원을 찾은 김씨에게 의사는 말한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세요.”

인터넷 보급은 정보화시대를 불러 왔지만 잘못된 정보와 상식을 퍼트려 ‘건강염려증’이라는 새로운 질병을 탄생시켰다. 김씨도 전문의 진단보다 인터넷 정보를 맹신해 끝없이 병원을 찾은 경우다.

건강염려증을 가진 사람은 사소한 신체증상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해 호흡이 가빠지면 심장마비를, 두통이 나면 뇌종양을 의심하며 불안해한다. 병원에서 아무런 의학적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지만 병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얽매여 김씨처럼 직장도 잃고 인간관계도 단절되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 보급이 일반화된 2003~2007년까지 건강염려증 환자 진료는 연평균 1만2000건 정도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보건복지위) 그러나 실제 환자 수는 질병통계상에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질환을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명지병원 정신의학과 손상준 전문의는 “건강염려증 환자는 일차 진료의사가 일주일 동안 보는 환자의 20.7%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며 “환자의 60~80%가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신체증상이 있다고 염려한다”고 말했다.

이 질환은 성별, 사회·경제적, 교육 수준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손상준 전문의

정신치료 거부 병원 떠돌다 시간·돈 낭비

남녀 모두 60대서 가장 높은 유병률

-건강염려증 발병원인은.

환자들은 인내성이 낮고 신경계가 예민해 약한 신체감각을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보통 사람이 뱃속이 약간 거북하다고 한다면 이 질환을 가진 환자는 복통으로 느낀다. 정신과적으로는 공격성이나 적대감이 신체로 변환된 것으로 설명한다. 과거에 상실을 경험했거나 배척을 받아 생긴 분노가 부적절하게 표현된 것일 수도 있고 죄책감이나 낮은 자존감을 감추려는 방어책일 수도 있다.

-진단기준은.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다는 두려움이나 생각에 집착할 때, 적절한 의학적 평가에도 계속 집착할 때, 병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 단순한 망상에 그치지 않고 걱정이 외모에 국한되지 않을 때, 지나친 염려가 사회생활, 직장에도 영향을 미쳐 심각한 고통을 받을 때, 이런 증상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건강염려증이라고 본다.

-치료방법은.

환자 대부분은 정신과 치료에 부정적이다. 정신치료로 스트레스를 줄여주면서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정기 검사로 의사가 환자를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침습적인 진단방법이나 치료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다.

-증상이 심해졌을 때의 상태는.

정신과적 질환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 때문에 다른 과를 전전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큰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을 전전하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계속 듣다보면 안심하기보다 오히려 본인의 병을 정확히 찾아내지 못한다고 실망한다.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유병률이 높은 연령은.

건강염려증 평생 유병률은 전체 0.7%(남자 0.5%, 여자 0.9%)이고, 1년 유병률은 전체 0.6% (남자 0.4%, 여자 0.7%)다. 남녀 모두 60대에서 가장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