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서전의 원고를 여러 번 보면서 볼 때마다 수정 사항이 생겼다. 각 페이지마다 인쇄되어 있는 글귀 ‘너그러이 돌아보는 나의 삶, 그것에서 찾는 밝음’이라는 것이 영향을 주었다. 내 자서전은 내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청년 포럼’의 대학생들이 써주고 있었다. 내가 직접 쓴다면 알아서 수위를 조절했겠지만, 대학생들은 타인의 입장이다 보니 내가 얘기한 것들을 자서전 내용에 담기도 바빴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서전 대상자들은 입을 잘 안 연다. 입을 안 열면 아무리 자서전을 잘 쓰려고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협조하는 차원에서 많은 얘기를 했다. 내 스토리를 얘기할 때 막걸리 집에서 주로 했다. 술을 마시면서 얘기하다 보니 표현도 격했고 진솔하게 얘기하다 보니 별의별 얘기가 다 담겼다.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 해지니 하지 않은 얘기도 만들어졌다.

난생처음으로 남들에게 뱉어낸 진솔한 얘기들이었다. 가슴 속 깊이 박혀 있던 회한과 원망도 쏟아져 나왔다. 지금껏 누구에게 그렇게 속내를 까 보이는 적은 없었다. 자서전을 나 혼자 보고 말 것이라면 아무렇게나 나와도 된다. 그러나 결국 주위 사람들이 보게 되어 있다. 실명이 나오고 실제 있었던 일이 언급된다.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나온다.

아버지는 주사가 심해서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했었다. 그걸 ‘포악했다’고 쓴 것을 보니 아무리 아버지가 그랬다 쳐도,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라 해도 그렇게 쓸 수는 없어서 수정했다. 큰형은 같이 자랄 때부터 바람둥이였다. 그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그치지 않았다. 형 때문에 집안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으니 개인적으로도 못되게 굴었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렇게 써 놓고 보니 지금 형의 두 아들도 멀쩡히 제 아버지 얘기를 볼 것인데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동생은 성격이 강한 형들 틈에서 기가 죽어서 자랐다. 말도 안 하고 늘 겉돌았다. 그렇게 써 놓고 나니 역시 본인이 읽어 봤을 때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수정했다.

내가 경험한 인간말종들도 몇 명 있었다. 아직도 풀지 못한 원한과 원망이 남아 있지만, 자서전에까지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안 만나고 있어서 더 이상 내게 해코지를 할 처지도 못되고 나도 잊으면 그만인 사람들이다. 그걸 굳이 기억해내서 상처를 다시 후벼 팔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너그러이 돌아보는 나의 삶, 그것에서 찾는 밝음’인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은 힐링인 셈이다. 말 안 하고 있었더라면 마음속 깊이 언제라도 박혀 있었을 것을 이 기회에 꺼내어 보고 날려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걸리는 부문에 대해서 진실과 미화 사이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다가 중간을 택했다. 진실은 한을 바위에 새기는 꼴이고 그렇다고 미화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삭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기억에서도 지우는 것이다. 원고를 몇 번이고 읽다 보면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보게 된다. 비하해서 썼던 말들도 순화된다. 그래서 힐링이 되는 것이다. 자서전은 그래서 누구나 꼭 써 볼 필요가 있다.

<시니어리포터 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