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자산 회피

위험자산 하락 촉발

국제유가 급락에 따라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수준의 에너지 기업들의 부채폭탄이 터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양적완화와 셰일붐 등에 힘입어 미 에너지 기업들은 금융위기 이후 적극적으로 부채를 늘려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유가 하락에 따라 기업들의 빚 상환에도 비상등이 켜진 것입니다.

12월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도이체방크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후 미 에너지 기업들이 대출·채권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5500억달러(약 605조3850억원)에 달합니다. 6년째 이어온 초저금리 기조로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쫓아 에너지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을 왕성하게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올 하반기 들어 유가가 폭락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만 해도 5.7%였던 부적격 등급 에너지 회사채 금리는 최근 5년래 최고치인 9.5%까지 치솟았습니다. 도이체방크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55달러로 내려가면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고 있는 에너지 기업들 중 33%가 부채 상환에 실패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신흥국 신용위기 가능성

지난 6년간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대부분의 경제주체가 부채를 늘려 왔으며 특히 신흥국의 부채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풍부한 달러 자금이 고수익을 쫓아 위험도가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되었고 신흥국 고금리 채권에도 유입되었습니다. 급증한 신흥국의 기업의 부채가 신흥국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촉발된 위험자산 회피 현상이 부채가 많은 국가와 기업의 조달금리를 뛰어 오르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외화 부채가 높은 국가와 기업은 통화 평가절하에 따라 그 만큼 더 상환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달러표시 부채를 보유한 신흥국이 상환부담이 늘고 있습니다. 신흥국 통화의 평가절하가 지속돼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질 경우 해당 기업의 부도가 이어지고 해당 국가의 신용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제유가 하락은 원유수출국 중에서 재정이 취약한 국가들을 부도위기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베네수엘라 등이 외환위기 조짐을 보이고 있고 국제 유가하락이 깊어지면서 투자자들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어 환율변동 부담은 적지만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조달금리가 급등하여 부도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중국은 올해 4월부터 부동산 거품붕괴가 진행되고 있어 내수가 부진하고 은행 연체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조달금리 양극화로 인한 부실기업들의 부도사태는 중국 경제성장 둔화를 가중 시킬 수 있습니다.

역자산 효과

미국 금융위기 이후 반복되는 경기부양책과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형성된 거대한 부채가 신용거품을 만들었습니다. 신흥국의 신용위기는 신흥국 자산가격을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자산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시 돈을 찍어 통화완화를 하더라도 위험회피심리 때문에 중앙은행 금고로 다시 돌아와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와 투자가 줄어드는 ‘역자산 효과’가 본격화할 수 있습니다. 소비와 투자가 줄어 지구촌 수요가 부진하면 기업들의 수익성이 더욱 나빠지고 부동산, 원자재 등 실물 상품자산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부채는 한번 늘면 좀처럼 줄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거대한 부채와 신용거품 때문에 세계경제가 어느 정도 하락한 후 바닥이 오더라도 장기간 불황국면이 이어지는 “L자형”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