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자 수를 당초 434만명에서 210만명으로 줄인 세제 개편안 수정안을 다시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서민·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며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세제 개편안 파문은 '증세(增稅) 없는 복지'라는 실현 불가능하고 상호 모순된 정책 목표에서 비롯됐다.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말은 식탁에 '뜨거운 얼음'을 올리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런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직(正直)밖에 없다. 우리가 당초 이러이러한 공약을 내세웠지만 그 모두를 이행하는 것은 재정적 형편에 비추어 무리이기 때문에 시급성(時急性)과 '실현 가능성'의 두 기준에 따라 공약을 재조정하겠다고 국민에게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이런 정도(正道)를 따르지 않으면 "비과세를 줄이는 것이지 증세가 아니다"는 말장난을 하게 되고, 이번처럼 국민의 분노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다시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는 문제의 근원(根源)인 공약 재조정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돌 빼서 저길 괴고, 저 돌 빼서 여길 괴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재원 조달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우리나라 소득세 세수(稅收)는 국내총생산(GDP)의 3.8%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8.4%의 절반도 안 된다. 복지 선진국인 덴마크는 그 비율이 24.5%, 스웨덴은 12.3%, 핀란드는 12.8%로 우리보다 3배 이상 높다. 소득세를 지금보다 더 걷거나 아니면 유럽 복지국가들처럼 부가가치세를 단계적으로 올려 세수를 늘리지 않는 한 우리가 복지사회로 가는 첫발을 내딛기 어렵다.

물론 세금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 영국 청교도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증세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변혁을 촉발시킨 사례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세금을 걷지 못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실패하면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폭발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우선 복지 공약을 실현 가능한 순서에 따라 재조정하고, 거기에 맞춰 현실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민 모두를 위한 복지를 하려면 세금이 더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