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12월로 넘기며 그새 시간이 그렇게나 됐어? 비 맞은 스님 모양 실없는 푸념을 늘어놓은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와아, 정말 무심한 건 세월뿐이다. 그새 중순을 넘어 한해도 이제 겨우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쓸 때면 부득이한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의 문장에 가능한 '~밖에'라는 말을 피하는 버릇을 가졌다. '~밖에'가 들어가면 듣기에 부정적 여운이 돈다. 마치 궁지에 몰린 곤궁함이 느껴지는 데다 무엇엔지 부족해서 들게 되는 미흡한 느낌을 아무래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박였다.

물론 문맥상 특별하고 예외인 경우는 이에 속하지 않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예쁘다고 '~밖에'를 쓰는 대신 '씩이나' 뭐 그런 등등의 긍정적인 말로 대체하기 위해 몇 번 다시 글을 다듬고 고쳐 쓰는 것이 혹시 나만의 결벽증이 아닌가 돌아보게도 되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정작 잘 하는 일인지 아닌지 딱 잘라 말할 수 없으니 가끔은 스스로도 난감해진다.

그건 여담이고 정말 12월도 다 저물었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꿈이 부풀대로 부풀어 나는가 하면 그 꿈은 곧바로 올해 받고 싶은 선물로 이어질 게 빤하다. 따라서 아이 중에는 이렇게 묻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잦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정말 있어요?" 또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나요?" 심지어 근래에는 "검은 얼굴을 가진 산타는 아직 못 보았는데요"

이런 식의 질문이 우선은 당혹스러워하며 대답에 쫓겨 머리를 쓱쓱 긁으며 난색을 표할 초보 부모들이 적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 얘기라면 아주 고렷적 얘기지만 우리 집에도 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갓 들어갔을 때의 일이니 대여섯 살 적 낡은 얘기가 되겠다. 거실에 만들어 세운 트리 밑에 그해 따라 딸이 간청한 장난감 재봉틀과 카드를 챙겨놓았다.

몇 시쯤일까, 우린 한참 꿈나라를 헤매는 형국에 방문이 열리고 아이가 잠옷 바람에 서 있는 거였다.

"왜? 왜 어디 아프니?" 잠꼬대처럼 두 사람이 외워대는데 아이는 얼굴을 찌푸려가며 그것도 야단치듯 말했다.

"엄마가 대문을 잠근 통에 산타 할아버지가 담을 넘어 들어오다 넘어져 쿵, 하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깼다"나. 바야흐로 지천명을 바라보는 딸의 순진함이 어미 눈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게 순진하다는 점에서 금방이라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예쁘고 착한 아이. 그 딸도 우리도 돌이켜 보고 만져보기에도 차마 아까울 정도로 눈부신 시절의 실종이 가열 찬 그리움의 회오리를 몰아오고 있는 지금이다.

어디서 보았더니 공식 인구통계를 보면 올해 전 세계적으로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이는 대충 16억 명이 된다고 한다. 어린이 하나 빠지지 않고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선 1초당 5566가구의 집을 방문해야 한다고, 가구당 평균 2,5명의 어린이가 있다고 가정할 때 6억 4천만 번 멈춰서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집집이 수고하는 산타에게 우유와 파이 같은 걸 먹도록 주선한 결과로 하룻밤에 총 1천 500칼로리나 섭취한다나. 그것도 웃으면서 그냥 내쳐 할 봉사거리는 못 되는 것 같다. 과체중분을 빼려면 지구 둘레의 5만 4천 배인 21억 킬로미터를 걸어야 된다나. 한명의 요정이 선물 하나를 10초 걸려 포장한다는 계산도 나온다다니 아무래도 우리의 현실정과는 조금은 달라 보이니 타산지석인 문제이며 별세계의 얘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저런 계산에 의하면 올해 세계 어린이 모두에게 줄 선물에 필요한 돈은 총 약 479조 원이라니 말 그대로 가공할 수치가 맞다. 등등의 내용 일체는 언필칭 우스개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그건 그렇다 치고, 손자 손녀 여럿 둔 우리 시니어님들은 당장이라도 잠자리를 파고들어와 위와 같은 질문 공세를 안 한다는 보장 없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할아버님 할머님! "산타가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제발 선물일랑 당신 맘대로 마시고 우리 맘에 맞는 거면 좋겠어요" 예쁜 뽀뽀까지 배로 받고 나면 꼼짝없겠죠. 두 손 들고 말 테죠. 그림이 보지 않아도 비디오네요. 하하하. 이렇게 저렇게 삶은 한겨울에도 얼음 밑을 쉼 없이 흘러가는 실개울 물처럼이라도 이어져 간다.

와중에 인생은 애당초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다가 아주 나중엔 믿지 않게 되고 결국 맨 뒷날에 이를 쯤에선 본인인 내가 산타가 되어야 하는 세 단계를 거치면서 생의 클로징 멘트를 써야 할 시간이 온다. 정이 유별하면 다른 사람이 못 느낄 아픔이 깊고 큰 법, 무심한 척 대범한 척 가다보면 오래되어 돌 같던 상처도 방금 핀 꽃의 분홍빛으로 웃어주지 않을까.

<시니어리포터 이승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