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인복지 수준이 국제망신을 당할 정도로 말씀이 아니다.

노인들의 삶의 질과 복지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 측정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HelpAge International)이 처음으로 종합평가해 발표한 '2013 글로벌 에이지워치(AgeWatch)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노인복지 수준은 100점 만점에 39.9점으로 조사대상 91개국 가운데 67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33번째, G20(주요20개국)가운데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터키와 인도네시아뿐이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연금수입 등 소득상황이 반영된 소득안정성 지수였다. 100점 만점에 8.7로 91개국 중에서 90위였다.

노인복지 지수는 소득, 건강 및 기대수명 등 보건상태, 고용 및 교육, 사회활동 여건과 환경 등 4개 분야로 측정된다. 보건상태(8위)와 고용 및 교육(19위), 사회활동여건과 환경(35위)지수는 비교적 양호했지만 소득수준이 전체 순위를 크게 끌어내린 것이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 스스로 "한국의 순위가 최하위권인 점은 놀랍다"면서 "이는 국민연금이 비교적 늦게 도입되는 등의 이유로 노인층 빈곤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70%가 연금에 가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60세 이상 노인들이 받는 소득수준은 전체 국민들 소득 중간치의 절반도 안 되는 낮은 수준이어서 노인빈곤율이 48.6%로 높게 나온 것이다.

이 조사보고서는 한국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6,774달러로 추계하고 "한국은 노인복지를 크게 증진시키기에 필요한 재원과 부(富)를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경제성장 수준에 걸맞지 않는 최하위권 순위가 '놀랍다'는 코멘트에다, 공개적으로 일침까지 가하는 등 우리로서는 이중 망신 아닐 수 없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마침내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앞으로 3년 후면 한국 사회는 명실 공히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26년이면 5명 중 1명 이상이 65세 이상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그럼에도 50대 이상 중고령층 80%가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연금을 포함해 예금 등 노후에 대비한 경제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37%에 불과하다.

주거비에다 자녀교육비와 결혼자금 등으로 허리가 휘어 노후준비를 못한 불우한 어르신들에게 지금 와서 "인생 잘못 살아왔다"다고 핀잔을 준 들 무슨 소용이랴.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노인자살률도 1위다. 의학발전 등으로 수명은 길어지는데 노후준비가 안 돼 있으면 오래 산다는 것 자체가 재앙일 수밖에 없다.

모든 노인들의 국민연금 가입이 바람직하지만 그러기에는 국민연금의 역사가 너무 짧다.

기초노령연금은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어 공적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소액을 받는 노인들에게 지급된다. 2007년 국민연금 급여율(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대폭 삭감토록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면서 이로 인해 악화된 공적연금의 기능을 보충보완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기초로 도입된 제도다.

박근혜 정부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2배 인상해 지급하겠다"고 지난 대선 때 공약했다가 집권 9개월 만에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20만원

을 차등지급하는 쪽으로 기초연금안을 발표해 공약파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재정부담이 그 이유다.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기초연금 이외에도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고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공약들이 줄을 잇고 있다.

기초노령연금만 놓고 본다면 재정부담 으로 인한 공약축소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70%의 노인에게 20만원 전액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할 경우 지출액은 2020년에 GDP대비 0.9%, 전체노인에게 20만원 전액 지급할 경우에도 소요재정 규모는 GDP 대비 1.2%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추정한다.

전체인구 중 노인인구가 20%에 가까워질 2020년에 정부가 GDP의 1%도 기초연금 재원으로 부담하지 못한다면 국가 스스로 노인 빈곤해소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노인복지 증진에 필요한 재원과 부를 한국이 갖고 있다는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 보고서와도 맥이 닿는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지급을 70% 노인으로 제한하고, 그 안에서도 국민연금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키로 연계방식을 바꾸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청장년층과 미래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도록 설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국민연금 성실납부자와 청장년세대를 역차별하고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을 확산시켜 제도의 지속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반론도 드세다.

국민연금과의 연계에 불복해 보건복지부장관이 사표를 내고,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오히려 기초연금액이 깎이는 데 불안을 느껴 40, 50대 장기 가입자들이 '노후버팀목'인 국민연금을 깨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전업주부 등 임의가입자나 지역가입자들의 국민연금 탈퇴는 이들 대부분이 바로 노후준비가 절실한 계층이란 점에서 국가적 부담으로 귀결된다. 국가재정과 미래세대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대중영합적인 '보편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로 과감히 전환하고, 선별복지를 뒷받침하는데 필요할 경우 증세방안도 적극 논의 추진해야 한다.

노인복지 최하위권은 국가적 수치다.

노인빈곤 해결에는 국가재정만으로 한계가 있고 노후 대비를 위한 심리적경제적 환경조성도 필요하다. 퇴직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을 손에서 놓고 노동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이 아니라 재고용, 고용연장, 시간제 근무, 유연 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통해 단계적이며 점진적인 노동시장 출구전략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기업은 숙련노동력을 좀 더 활용하고, 노령근로자는 일 자체를 즐기면서 경제적 압박과 정서적 고립감을 덜고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윈-윈'모델을 만들어 나가야한다는 얘기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치면 국민연금가입자에게 손해가 안 된다' '공약파기가 아니라 조정이다'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말고, 지킬 수 없는 복지공약에 대해 국민 앞에 솔직히 사과하고 지금부터라도 정공법으로 근원적 해법을 모색해야한다. '면피성' 해결방안은 기형적 복지정책으로 이어지고, 국가재정 및 국력의 낭비와 소모를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