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개인 차원의 재무적인 설계들은 강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각 금융기관들이 연금형 상품과 노후 의료보장 등을 강화한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보급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이에 반해 은퇴 이후 30년동안‘일 안하고 노는 법’에 익숙하지 않은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문화적인 인프라는 빈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초고령화에 따른 문화적인 지형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실업자들이나 찾던 북한산은 주말에 신호등이 있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아웃도어 패션이 초고속 성장을 하고 아웃도어 브랜드 전성시대가 열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노인들의 놀이마당 역할을 하는 파고다공원에는 실버 문화를 담은 ‘콜라텍’ 등이 성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수요는 많다.

사실 한동안 잊혀졌던 ‘세시봉’이나 ‘조용필’의 부활은 이제 막 노인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베이비 부머들이 추억과 향수를 찾아 나선 결과로도 해석된다. 환갑 지난 조용필의 부활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인구구조의 상위를 차지하는 이들을 위한 문화적인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보여준다.

카메라 둘러메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후원에 출사 나갔을 때의 경험이 생각난다. 60~7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등산복 패션에 캐논의 최고급 DSLR 카메라의 하나인 5Dmk3 모델에 최고급 L렌즈를 장착하고 풍경을 담는 진지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 카메라와 렌즈를 합한 가격은 500만원을 훌쩍 넘는 수준. 세계적인 사진가들이 스냅용으로 쓰는 바로 그 카메라를 노인들이 쓰고 있다는 것이 낯설었을 정도다.

이들이 스스로 노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증거다. 일흔을 훌쩍 넘긴 필자의 노모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눈도 아프실텐데 그걸 왜 배우시냐”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몇주 후 노모는 휴대폰 문자로 “아들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지하철 옆자리의 대학생에게 문자 보내는 법을 배우셨다고 한다.

실버 문화를 노인들이 스스로 찾고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묻지마 관광과 다단계 판매 등 노인들의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파고드는 사회적인 병리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국가차원의 문화지원 사업을 펼쳐야 할 때다.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과 구민센터 등을 활용한 오프라인 방식 뿐 아니라 노인들을 위한 온라인 마당도 만들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기능을 강화한 스마트폰 개발도 필요하며 이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도 적극적으로 개발, 보급해야 한다. 오랜 사회경험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은퇴 계층은 이미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소통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 ‘온라인’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것은 고령층이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시작한 결과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요양비 지원사업의 영향으로 전국 곳곳에 요양원이 들어서고 있고, 요양사는 새로운 직종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실버산업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방안도 필요하다. 몸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인테리어사업 등에서부터 원격진료를 위한 비즈니스 등 무궁무진한 사업 영역이 향후 GDP를 구성하는 새로운 사업으로 부상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차단하기위해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졌던 것 처럼 노인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같은 정책 기능을 담당할 ‘노인청’ 설립도 검토해야 할 때다.

[이데일리 조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