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중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는 어디서 사는 게 행복할까에 대하여 담론이 깊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의 대부분이 시니어가 되어서도 이전에 살던 집에서 그냥 살고 있는데 그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맞장구도 치고 아쉬워도 하고 그러다가 술잔 숫자만 늘렸다.

우리보다 10년 정도 연상의 깨었던 선배들은 50줄에 들어서면서 강남의 집을 팔고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가 퇴직하고 나서는 용인 수지로 이사를 가면서 자녀들 결혼도 잘 시키고 본인들 노후 주거지에 대한 품위도 유지하였는데, 이미 시기가 지나간 줄도 모르고, 선배만 따라하던 신 4050중에는 품위는커녕 하우스푸어가 되어서 전전긍긍하며 초라하게 살고 있다.

이런 불행한 경우에 끼이지 않고 축복받은 4050 시절을 보낸 사람은 퇴직 후에도 살고 있던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할까? 이사를 가야 할까? 간다면 어디로 가는 게 맞는가? 정답을 모르는 이야기로 우리는 목롯집 매상만 늘리고 말았다.

100세 시대라는 미증유의 시대상황과 관계없이 은퇴준비에 대한 사회적 공론이 우리보다 먼저 이루어진 구미 선진사회에서는 퇴직준비를 위한 검토 대상 1호가 '은퇴 후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은퇴준비자금이 10억 원이 맞을지, 5억 원이라면 어떻게 저축해 나갈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왜지? 그들은 국가의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돈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러나? 결코 아니다. 그들은 직장생활 시절에 살던 집과 퇴직 후에 살게 될 집의 용도 차이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직장생활 할 당시의 주거지 결정 이유를 보면 다음 셋 중에 하나다. 첫째 학군, 둘째 직장에의 접근성, 셋째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주택 가격의 상승 가능성이다.

지금 퇴직하는 시니어들에게는 이 3가지 이유가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늦둥이를 두었더라도 학군 문제와는 인연이 끝난 시점이고 직장은 이제 끝났고 값비쌌던 주택일수록 하향곡선만 긋고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퇴직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최소한 퇴직 5년 전부터 퇴직 후에 거주하고 싶은 주거지를 자기 형편에 맞게 미리 결정하고 이에 맞추어 준비한다.

퇴직 후에는 '어디서 살아야 즐겁고 건강하게 친구도 자주 만나며 보람 있게 살 수 있을까?'를 미리 고민한다. 자기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고액의 은퇴자금 준비에 연연하지 않는다. 학군, 출근거리, 부동산투자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자기 희망을 설계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미 알고 있어서 주택규모를 줄이고 싶은데 집이 안 팔려서 안 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지만 상황인식은 제대로 해 두어야 기회가 오면 작은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도시가 좋으면 넓은 집을 도시 내 펜션으로 운영하며 살 수도 있고 귀촌을 바라면 그곳에서 지낼 자기만의 일거리를 보듬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즐겁게 그곳 커뮤니티에 낄 수 있는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제주도가 인기란다. 부동산 값도 꾸준히 오른단다. 그래도 제주도로 이민(?) 가기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사실은 젊은이 일수록 더 어렵다. 그런데도 용기와 철저한 준비로 제주도 정착에 성공한 젊은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10년 이상 다니던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이주하기 위하여 부인은 제주도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배우러 혼자서 이집트에 가서 바다 다이버 공부와 자격증 취득으로 6개월의 돈과 시간을 썼다.

젊은이의 도농 간의 주거지 이전은 인생의 큰 모험이 되므로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시니어는 조금만 일찍 생각하고 준비를 하면 큰 위험 부담 없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설계할 수 있다. 도농 간이든 다운사이징이든 버릴 것도 포기할 것도 별로 없이 자유롭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면 지금 이룬 것만으로도 형편에 맞게 행복한 신중년 시절을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비 시니어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최근에는 중요 일간지 C 일보가 신중년 관련 기획기사를 연 이틀씩이나 톱기사로 다루었다. 여기서도 주거지 이전 문제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할 시니어의 일자리 욕구만 나열하고 있는 기사를 보고서 민망한 마음을 이 글로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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